자연을 누비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존재 엔키두는 생전 처음보는 여인 샤마트의 나체에 넋이 나가 일곱 날 밤을 샤마트와 보낸다.
샤마트와의 황홀한 날들 이후에 자유로운 황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엔키두는 자연을 호령했던 자신의 손아귀가 헐궈워짐을 느꼈다.
짐승들은 그를 피하고, 처음으로 느끼는 쓰라린 외로움이 그를 덮쳤다.
엔키두는 샤마트에게 돌아갔고, 샤마트는 엔키두에게 자신의 고향 우르크에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엔키두는 덥수룩한 몸의 털을 깎고, 살갗에 기름을 바르고, 값비싼 옷으로 발가벗은 몸을 가린 후, 우르크를 향해 떠난다.
그는 성과 사치의 유혹에 이끌린 나머지 자연의 기질과 자유를 저버리고 우르크로 들어간다.
자연에 엔키두라는 패자가 있었듯이, 우르크에는 길가메쉬라는 패자가 있었다.
둘 간에 서열다툼 끝에 그들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전에는 놀랍도록 현대적인 듯 보이는 그 도시에 관한 질문들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왜 엔키두처럼 타협하고 도시에 정착하기로 했을까?
그들은 도시의 안락함을 위해 원시적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어떤 대가를 치뤘을까?
자연환경에서 진화한 종족이 어떻게 거의 전적으로 다른 도시라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그에 따른 심리적 대가는 무엇일까?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도시 생활이 따분해지고, 엔키두와 함께 신들의 비밀스러운 금단의 장소 레바논 산의 삼나무숲으로 용감히 떠나 그곳의 거대한 수호자인 괴물 훔바바를 무찌른다.
그러나 의기양양해진 두 영웅은 급기야 신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길가메시가 이슈탈 여신의 성적 구애를 거절하자, 여신은 천상의 황소를 보내 우르크를 파괴하고 길가메시를 죽이도록 한다.
그러나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그 짐승을 죽여버리고, 그들의 오만한 태도에 신들은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신들은 엔키두가 병에 걸리도록 하고 엔키드는 결국 쓰러진다.
엔키드는 몸져 누은 채 죽어가며 샤마트를 주저했다. 엔키드는 샤마트를 자유롭고 행복한 자연의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그를 매혹한 매춘부로 묘사된다.
그는자연스러운 삶과 문명 속에서의 삶을 바꾸기로 결심한 탓에 힘이 빠지고 약해지고 만 것이다.
도시는 치명적인 살인자다.
인간과 동물이 배출하는 막대한 양의 폐기물이 저 한쪽에 괴어 있는 물로 흘러들어가는 우르크 같은 도시는 마치 미생물을 위해 특별히 지은 도시처럼 보일 정도이다.
19세기의 산업도시인 멘체스터와 시카고는 저넻 유아의 60퍼센트가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죽었고, 주민들의 기대수명이 26세에 불과했다.
반면, 동시대의 농촌지역에서는 5세 이전에 사망하는 유아가 전체의 32퍼센트였고, 주민들의 기대수명이 40세였다.
여갓 전체를 통틀어 도시는 빠져나와야 할 곳이었다.
20세기 미국과 유럽에서는 범죄가 만연하고 갑갑하기만 한 도시를 서둘러 떠나 수풀이 울창한 교회라는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도시는 우리의 뇌와 신겨외로망 배선을 바꾼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보다 기분장애와 불안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후러씬 더 높다.
범죄, 질병, 죽음, 우울감, 신체적 노화, 빈곤, 인구 과밀 따위를 감안할 때 도시는 괴로운 곳이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곳인 셈이다.
20세기가 들어 의술이 발달하고 위생이 개선되기도 전에 도시에는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어야 했다.
그래야 기존의 주민들을 부양할 수 있고 질병으로 숨진 사람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엔키두도 도시에 발을 들여놓는 데 값비싼 대가를 깨달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절친한 벗인 길가메시는 가슴이 찢어질 듯 슬퍼했다.
미칠듯한 괴로움에 휩싸인 영웅의 눈에 비친 도시는 이제 인간이 쌓은 업적의 최고봉이 아닌, 죽음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리하여 길가메시는 우르크를 버리고 자연에서 위안을 찾았다.
죽은 친구가 그랬듯이 야생동물의 가죽으로 몸을 가린 채 황야를 떠돌아다녔다.
메트로폴리스 제 1장 도시의 여명 중.